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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호흡이 안정되기를, 마음에 평화가 깃들기를

요가 다녀왔습니다

저자  신경숙
출판  달
발행  2022.11.16.

 

 

P.20~21
수술은 복강경으로 진행되어 크게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사흘인지 나흘인지 입원을 했었는데 병실의 창이 거리를 향해 나 있어서 밤에 잠들기가 어렵기는 했다. 커튼을 내려도 어슴푸레한 빛이 자꾸만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 빛 속에서 천장을 보며 누워 있다가 결국은 일어나 책을 읽었을 것이다.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아가야, 나에게 와…… 중얼거렸을지도. 

그 일은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이 없다. 건강검진 때조차 수술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무 표시를 하지 않았다. 그 수술 이후에 나에게 꿈처럼 아이가 왔다면…… 아마도 그 아이에게는 내가 너를 얻기 위해 수술을 했었다고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P.51~54
“오늘 내가 말할 게 있어요.” “…….” “사실은 내가 좀 이상해진 지 꽤 되었어요.” (…) 

나는 시체 자세에서 실눈을 뜨고 문가의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리를 내려다보더니 매트도 깔지 않은 바닥에 사바 아사나 자세로 누웠다. 한 세계가 눕는 것 같았다. 나는 몸에 힘을 쭈욱 빼고 다시 눈을 감고 나도 모르게 깊은 복식 호흡을 했다. 할머니의 호흡이 안정되기를, 할머니의 마음에 평화가 깃들기를, 할머니의 요가가 계속되기를.

 


P.76
나날이 요가 자세가 더 후퇴하고 있다는 걸 느끼는데도 요가 수업을 마치고 나면 좋은 기운을 받고 어딘가로 출발하는 느낌을 받는다.

 


P.124~128
나는 기묘한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여기까지만, 하며 한 문장을 쓰고 일어나고…… 다시 여기까지만, 하고선 다시 한 문장을 쓰고 의자에서 일어나기를 반복해가며 그 장면을 완성했다. 여기까지만…… 하며 한 문장을 쓸 때마다 어느 한밤 겨울 골짜기의 눈들, 새들, 나무들이 그 문장을 쓰고 있는 나를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

어떤 선생님은 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갔을 때의 상태를 기억한다고 말해주었다. 몸의 기억력은 대단히 뛰어나서 한번 도달해본 그 지점을 잊지 않는다는 것. 다음번에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 몸은 이미 한번 넘어가본 그 지점까지는 가볼 준비를 한다고도 했다. 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만큼 무한한데 몸의 주인인 우리가 고통과 대면하지 않거나 새로운 시도를 주저할 뿐이라고. 고통을 호흡으로 안정시켜 안아주고 그 한계를 넘어가보고 또 넘어가보라고.  

 


P.205
후퇴해도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을 얻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알고 있다. 다시 시작해도 나는 앞으로 점점 더 요가 실력이 후퇴하리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가를 계속하기로 한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뒤로 물러나는 것들이 남겨놓을 무늬들을 끌어안기로 한다.

예상대로 되지 않는 것.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다고 해서 계속 그렇게 살게 되지 않는 것. 결말을 알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보는 것. 이것은 희망이기도 하고 절망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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