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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영상 속의 내가 나에게 전하는

오늘도 취향을 요리합니다

저자  박미셸(it's Michelle) 
출판  서스테인
발행  2022.8.19.



P.173
나는 결코 모든 빵을 집에서 굽거나 끼니마다 화려한 요리를 하는 게 아니다. 매번 그렇게 할 만큼 부지런하지도 못하거니와 연년생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는 훌륭한 핑계로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밥을 하기도 전에 체력이 방전돼서 대충 때운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럼에도 스스로 정해둔 약속은 꼭 지키려고 노력했는데, 그중 가장 열심히 실천한 것이 ‘음식은 그릇에 덜어 먹기’와 ‘나를 위한 반찬 하나라도 만들기’였다. 이 두 가지만 지켜도 밥상이 꽤 그럴싸해 보이기 때문이다. (…) 거창한 요리를 하지 않아도, 중요한 건 현재의 기분을 인지하고 나를 위해서 뭐라도 만들어 먹는다는 목적과 결과다. 


P.201~204
이대로 흘려보내기엔 내 삶이 가엾다. 누군가의 삶을 부러워하기만 해서는 나에게 득 될 것이 하나도 없으며, 오히려 지금 갖고 있는 것마저 가치를 깨닫지 못해 곧 놓치고 말 것이다. ‘브이로그니까 삶의 가장 빛나는 부분만을 담았을 거야.’ 머리를 식히며 되뇌어보았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고요하게 밥을 차려 먹은 이에게도, 몇 시간째 소리를 지르며 우는 아이를 끌어안은 채 울며 아침밥을 거른 나에게도, 모두에게는 결국 낮이 지나면 밤이 오기 마련이라고. 다만 그 밤을 쉼으로 보내는가, 뜬눈으로 지새우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영상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 내일의 태양이 기다려지는 짙푸른 희망으로 보일 수만 있다면, 내 삶을 영상 안에 넣어봐야 했다. 나를 제삼자의 눈으로 지켜보고 싶었다. 여전히 어두울지 궁금했다. (…) 나는 최선을 다해서 하루를 살고 있으며 충분히 나를 사랑해주고 있다. 영상 속의 내가 영상 밖에서 들여다보는 나를 그렇게 매일 위로해주었다.


P.216~217
한참을 서서 심호흡을 하다 보면 열기가 식은 목은 이내 차가워지고 조금씩 눈물이 차며 가슴이 조여온다. ‘괜찮아, 열심히 노력하고 배우고 있고 자라고 있으니까. 괜찮아.’ 그러나 끝내 눈물이 왈칵 흐른다. 이튿날 아침, 조용히 일어나 아침으로 팬케이크를 만들고 부지런히 점심 도시락을 준비한다. 도시락으로는 J와 둘째 아이가 좋아하는 참치김치볶음밥을 고슬고슬하게 볶아서 보온병에 담았다. 아침을 먹고, 양치하고 세수를 한 뒤 옷을 갈아입고 온 말간 아이 얼굴에 로션을 발라준다. 물끄러미 나를 보던 J가 말한다. “엄마, 오늘은 잘할 수 있어요. 오늘은 해피한 하루를 보낼 거예요.” 잊지 말아야 한다. 수년 전의 내가 J와 함께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순간이 오기를 얼마나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기다렸는지, 지금 J는 말로 표현하지 않은 내 마음을 읽었으며 그로 인해 슬픔을 느꼈고, 고민 끝에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낼 것인지 나에게 또박또박 전해주었다. “그래, 너는 할 수 있어. 오늘은 행복한 하루를 보낼 거야, 잘할 수 있어!” 토실한 J의 볼을 감싸며 눈을 맞추고 웃으니 J도 배시시 웃는다. 그래, 이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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