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
극본 김은숙
연출 이응복
출연 이병헌, 김태리, 유연석, 김민정, 변요한 외
방송 2018.7.7. ~ 2018.9.30.
고애신
동지인 줄 알았으나 그 모든 순간 이방인이었던 그는 적인가, 아군인가.
신문에서 작금을 낭만의 시대라고 하더이다. 그럴지도. 개화한 이들이 즐긴다는 가배, 불란서 양장, 각국의 답례품들. 나 역시 다르지 않소. 단지 나의 낭만은 독일제 총구 안에 있을 뿐이오. 혹시 아오? 내가 그날 밤 귀하에게 들킨 게 내 낭만이었을지.
나도 그렇소, 나도 꽃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불꽃이오. 할아버님께는 잔인하나 그렇게 환하게 뜨거웠다가 지려 하오. 불꽃으로.
그 생각을 내가 안 해봤을 것 같소? 가보지도 않은 미국의 거리를 매일 걸었소. 귀하와 함께 나란히. 그곳에서 공부도 했고, 얼룩말도 봤소. 귀하와 함께 잠들었고, 자주 웃었소. 그렇게 백 번도 더 넘게 떠나봤는데, 그 백 번을 나는 다시 돌아왔소.
학당에 다녀야겠다 결심하였습니다. 새드엔딩의 반대말을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여, 알았느냐?) 모든 끝맺음은 나름의 슬픔을 품고 있으니 여직 알지 못하였사옵니다.
그의 선택들은 늘 조용했고 무거웠고 이기적으로도 보였고 차갑게도 보였는데 그의 걸음은 언제나 옳은 쪽으로 걷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가졌던 모든 마음들이 후회되지 않았습니다. 전 이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를 만나기 전으로.
유진초이
참 못됐습니다. 저는 저 여인의 뜨거움과 잔인함 사이 어디쯤 있는 걸까요?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더 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불꽃 속으로. 한 걸음 더.
나는 귀하가 이 총과 함께 계속 나아가서 어딘가에 가닿기를 바라오. 그곳이 어디든, 그 길 끝에 누구와 함께든.
그댄 이미 나아가고 있소. 나아가던 중에 한 번 덜컹인 거요. 그댄 계속 나아가시오, 난 한 걸음 물러나니.
구동매
제가 조선에 왜 돌아왔는지 아십니까? 겨우 한 번, 그 한순간 때문에. 백 번을 돌아서도 이 길 하나뿐입니다, 애기씨.
역시 이놈은 안 될 놈입니다. 아주 잊으셨길 바라다가도 또 그리 아프셨다니, 그렇게라도 제가 애기씨 인생의 한순간만이라도 가졌다면 이놈은 그걸로 된 것 같거든요.
김희성
그대가 내 양복을 입고 애국을 하든, 매국을 하든 난 그대의 그림자가 될 것이오. 허니 위험하면 달려와 숨으시오. 그게 내가 조선에 온 이유가 된다면 영광이요.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들이구려. 내 원체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웃음, 농담, 그런 것들. 그런 이유로 그이들과 한패로 묶인다면 영광이오.
쿠도 히나
그깟 잔이야 다시 사면 그만. 나는 네가 더 귀하단다. 그러니 어느 누구든 너를 해하려 하면 울기보단 물기를 택하렴.
헛될수록 비싸고 달콤하지요. 그 찰나의 희망에 사람들은 돈을 많이 쓴답니다. 나라를 팔아 부자가 되겠다는 불순한 희망, 애를 쓰면 나라가 안 팔릴 거라는 안쓰러운 희망, 정혼을 깰 수 있겠단 나약한 희망. 그런 헛된 것들이요.
여인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한철에 시들 꽃이 아니라 늘 진심이지요. 오래된 진심일수록 더 좋구요.
어제는 멀고, 오늘은 낯설며, 내일은 두려운 격변의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각자의 방법으로 격변하는 조선을 지나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돌아서겠느냐? 화려한 날들만 역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질 것도 알고 이런 무기로 오래 못 버틸 것도 알지만 우린 싸워야지. 싸워서 알려줘야지. 우리가 여기 있었고, 두려웠으나 끝까지 싸웠다고.
눈부신 날이었다. 우리 모두는 불꽃이었고, 모두가 뜨겁게 피고 졌다. 그리고 또다시 타오르려 한다. 동지들이 남긴 불씨로. 나의 영어는 아직 늘지 않아서 작별인사는 짧았다. 잘 가요, 동지들. 독립된 조국에서 씨 유 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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