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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

거미여인의 키스 

저자  마누엘 푸익
역자  송병선
출판  민음사
발행  2000.06.12.
원제  El Beso de La Mujer Araña(1976)

 

 

P.266~268
「몰리나…… 아직도 창피해 죽겠어……」
「뭐가 창피하다는 거야?」
「오늘 아침에 내가 너무 심했어」
「바보 같으니라고……」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은…… 구두쇠야. 그런 사람은 자기 것을 주는 것도 싫어하거든」
「그렇게 생각하니?」
「그래. 계속해서 그 생각을 하다가 얻은 결론이지. 나한테 너무 잘해 주었는데도 신경에 거슬렸던 것은…… 내가 너와 똑같이 해 줄 수 없어서 그랬던 거야」
「그렇게 생각해?」
「그래, 그래서 그랬던 거야」
「글쎄…… 나도 생각해 봤는데, 갑자기 네가 한 말이 생각났어. 네가 왜 그런 식으로 했는지 난 이제 완전히 알게 되었어」
「그런데 내가 너한테 무슨 말을 했지?」
「너희들이 지금처럼 투쟁을 하는 동안에는 그 누구와도 정을 나누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이었어…… 그래, 정을 나눈다는 말은 너무 지나친 표현 같고…… 친구로서 우정을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이었어」
「그건 네가 내 말을 너무 너그럽게 해석한 거야」
「이제 나도 가끔은 네 말을 알아듣는다는 걸 알았지?」
「그래. 하지만 이 경우, 그러니까 우리 두 사람이 갇혀 있는 동안에는 투쟁이란 없어. 누가 누구를 이겨야 하는 전쟁은 없는 거야. 내 말 듣고 있어?」
「그럼. 계속해 봐」
「우리가 외부 세계로부터 너무 많이 억압받고 있어서 문명인답게 행동할 수 없는 걸까? 그런데 외부 세계의 적이 우리를 억압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이 세상의 잘못된 모든 것들, 그리고 내가 바꾸고 싶어하는 것들…… 이런 것들 때문에 내가 한 순간도 인간답게 행동하지 못하는 것일까?」
「넌 뭘 만들 거야? 물이 끓고 있어」
「우리 함께 차를 마시자」
「좋아」
「내 말 잘 알아들었는지 모르겠군……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 둘, 그러니까 우리 관계는, 글쎄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래, 우리 관계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어. 우리 관계는 그 누구도 이래라저래라 강요할 수는 없는 거야」
「물론 그렇지. 계속해. 듣고 있으니까」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야. 알겠지? 여기에 있는 것은 우리가 무인도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야. 아마도 여러 해 동안 둘이서 외롭게 지내야만 하는 무인도 말이야. 감방 바깥에는 우리를 억누르는 사람들이 있어. 하지만 이 안에는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어. 여기에는 누가 누구를 억압할 수 없어. 단지 있는 것이라고는 지쳐 있는, 아니 뒤틀려 버린 내 마음을 괴롭히는…… 어느 한 사람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날 잘 대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야」

 

 

P.334~335
「미안해, 널 혼자 두게 되어서」
「미안해할 필요 없어. 네 엄마를 볼 수 있고 또 엄마를 돌볼 수 있다는 데 만족해야 돼. 네가 원한 건 바로 그것이었어. 내 말이 틀렸어?」
「……」
「자, 나 좀 쳐다봐」
「만지지 말아」
「그래, 좋아. 몰리나」
「…… 날 그리워할 거야?」
「물론이지. 보고 싶을 거야」
「발렌틴, 난 한 가지 약속을 했는데, 누구한테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 아마 하느님한테 한 것 같아. 하느님을 믿진 않지만」
「음……」
「내가 평생 가장 원했던 것은 엄마를 돌보기 위해 이곳을 나가는 것이었어. 그래서 어떤 희생도 감수했어. 내 일은 모두 다 뒤로 미루었어. 난 무엇보다도 엄마를 돌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어. 그리고 내 소원은 이루어졌어」
「그럼 만족해야지. 넌 참 훌륭한 놈이야. 네 자신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니 말이야. 그런 네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돼」
「그런데 그게 잘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발렌틴?」
「무슨 소리야?」
「그럼 나한테는 항상 아무것도 남지 않잖아…… 인생을 살면서 내 것은 하나도 남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로 공평하느냐는 말이야」
「그래, 네 말도 일리가 있어. 하지만 넌 엄마가 있어. 그건 네 책임이야. 그리고 넌 그 책임을 받아들여야만 되고」
「그래, 그 말은 맞아」
「그런데?」
「내 말 좀 들어봐. 엄마는 자기의 삶을 살았어. 그녀는 살 대로 다 살았단 말이야. 남편도 있었고, 자식도 가졌고…… 엄마는 이미 늙었어. 엄마의 인생은 거의 다 끝났는데……」
「하지만 아직도 살아 계시잖아」
「그래. 그리고 나도 살아 있어…… 그런데 내 삶은 언제부터 시작하지? 언제가 되어야 내가 내 것을 만질 수 있고, 내 것을 가질 수 있지?」
「몰리나, 각자의 상황에 만족해야 돼. 석방시킨다니 넌 횡재한 거나 다름없어. 그것에 만족하도록 해. 밖에 나가면 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야」
「난 너와 함께 남아 있고 싶어. 지금 내 단 한 가지 소원은 너와 함께 있는 거야」 

 

 

P.345
「몰리나, 남한테 무시당하면서 살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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