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영양제
저자 오지은
출판 위고
발행 2023.12.25.
P.46
영양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전세계의 조상들이 좋아하던 나무뿌리나 풀뿌리를 캡슐이나 알약 안에 넣은 것’이 아닐까. 약간의 현대 과학적인 설명을 붙여서 말이다. 녹차를 마시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어느 중국 할머니가 말했다. 현대 과학은 그 편안함이 그 안에 들어 있는 테아닌에서 온다고 밝혔다. 아슈와간다를 먹으면 잠을 깊게 잘 수 있다고 어느 인도 할아버지가 말했다. 현대 과학은 그 안에 든 위타노사이드 덕분이라고 밝혀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다. 사실은 테아닌이 혼자 하는 일이 아닌, 녹차 안에 든 어쩌구와 저쩌구와, 무엇보다 녹차를 마시는 시간의 고요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위타노사이드가 아닌, 아슈와간다에 든 다른 물질과 할아버지가 손녀를 생각하며 아슈와간다를 짓이겨 정성껏 빚어 만든 환약이, 그리고 손녀가 자기 전에 그걸 머리맡에 둔 마음이 손녀를 푹 자게 도운 것이 아닐까.
P.135~136
영양제를 먹는 마음은 기본적으로 달 밝은 밤에 정화수를 떠다 놓고 비는 마음과 같다. 그것은 치성을 드리는 마음이다.
(…)
많은 것은 섞여 있다. 실제의 효과라는 부분만 본다면 영양제도, 108배도, 냉혹한 논문 앞에선 ‘별 효과 없음’ 딱지가 붙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논문의 영역에서 측정할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것이 있다. 그건 엄마가 108배를 하며 되새겼던 마음이고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다 놓고 그 앞에서 비는 마음이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달님께 별님께 비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이 이뤄내는 것들이 있고 현대 과학은 아직 그걸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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