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otes

미스터김

쇼코의 미소

저자  최은영
출판  문학동네
발행  2016.07.07.

 

 

P.62
나는 할아버지를 영화제에 초대하지 못했었다. 팔순이 다 된 노인이 굳이 이것 때문에 서울에 올라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고, 내 앞으로 지급된 표는 내가 인정받고 싶었던 영화계 사람들에게 뿌린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시사회에 오실 수 있느냐고도 묻지 않았었다. 할아버지가 보여달라고 한참이나 보챈 뒤에야 나는 노트북에 저장해놓은 영화를 할아버지 앞에서 틀었었다. 집을 잃은 소녀가 공사가 중단된 빈 아파트에 살다 쥐로 변하는 내용의 십오 분짜리 단편영화였다.

영화는 당연히 혹평을 받았다. 선악의 경계가 너무 분명하고 메타포가 강해서 세련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무 평도 내리지 않고 그저 내게 묻기만 했다. 그런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은 건지, 정말로 집을 잃은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있는지, 심지어 사람이 정말 그렇게 쥐로 변할 수 있는 건지, 그 소녀를 잡아낸 카메라는 누구의 시선인지 묻기도 했다. 그 불편하고 듣기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나는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애썼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나의 유일한 관객이었다.
 

 

 

'not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 한  (0) 2023.03.03
식물들을 심을게요  (0) 2023.02.25
당신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는걸요  (0) 2023.02.21
어디서 살 것인가  (0) 2023.02.18
사실은 착한 아이란다  (0) 2023.02.18